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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문화계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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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20세기 초중반에는 루이나 공산당이 존재했다. 당시에는 냉전이 발생하기도 전이었고, 결정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미합중제국과 소련은 서로 추축국에 대항하는 동맹국 사이였던지라, 루이나 내에서 공산당에 가입한 이들도 적지 않았고, 당연히 루이나 예술계에도 공산당에 가입한 당원들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2차 대전 중에는 '나치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는 우리의 동맹국 소련을 지원하기 위한 루이나 공산당원들의 후원회' 같은 행사들이 루이나 각지에서 열리기도 했고, 루이나 정부도 무기대여법을 통해 동맹국인 소련에 정식으로 대거 무기와 물자 공여를 하기도 했으며, 당연히 사람들에게도 루이나 내 공산당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문제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냉전이 격발되면서 시작된다. 이는 냉전 발생 후 루이나 내 반루이나활동조사위원회가 문화계의 공산주의적 색채를 띈 작품들의 위험성을 조사하면서 시작됐는데, 예술계 인사 중 공산당원이면서 조사에 응하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위원회에 소환을 하였다. 당시 영화 제작자들은 노조와의 불협화음, 높아지는 제작비, 그리고 독점을 제한하는 '파라마운드 판결'의 영향 등으로 재정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원 색출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한 마디로, 매카시즘 광풍에 속에서 거대 스튜디오와 제작자들의 입김을 확대할 수 있는 예술계의 '공공의 적'이 필요했던 것. 이런 광풍 속에서 당시에는 예술계 내부에서 동료들끼리 서로를 고발하고 밀고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어쨌든 의회 반루이나동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 중, 최종적으로 남은 예술계 인사 10명에게 그들이 공산당원인지, 또 다른 공산당원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문제는 이전까지 '''공산당 가입은 불법이 아니었다는데 있었다.''' 소환된 10명은 끝내 답변을 거부하였고, 이를 두고 의회는 '의회모독죄'로 기소하면서도[* 공산당 가입 및 활동만으로는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의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국회의 조사 활동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는 트집을 잡아서 의회모독죄로 걸어버린 것.] 그들의 작품 활동을 제한하였다. 참고로 당시 최고의 각본가로 손꼽히던 돌턴 트럼보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였지만, 이러한 와중에도 로버트 리치라는 필명을 통해 영화 브레이브 원으로 오스카 상을 수상하는 등의 비밀리에 활동을 지속하였다. 하여튼 당시 매카시즘 광풍은 루이나 정치, 사회 전반 뿐만 아니라, 문화계에서도 큰 상처를 주었다. 특히 지금까지도 루이나 문화계에서는 당시 정부와 수사 당국의 매카시즘 광풍에 협조하여 동료들을 고발하고 밀고했던 당시 문화계 인사들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직접 피해자인 돌턴 트럼보를 그린 영화 트럼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영화 추억, 코엔 형제의 연출작 헤일 시저 등의 작품을 보면 당시 할리우드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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